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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장을 보면서 오랜만에 좀 답답했습니다. 주말 사이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우리는 AI 모델의 능력을 개선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글을 올렸고, 그 한 문장 때문에 국내 증시가 통째로 흔들렸거든요. 염승환 이사님의 9월 14일 시장 함께 읽기를 보니 같은 고민을 밤새 하신 모양이더군요.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소음이다.” 저도 큰 방향에서는 동의합니다. 다만 소음이라고 부르는 순간 놓치게 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서, 오늘은 영상 내용을 정리하면서 제가 다르게 본 부분도 같이 적어보려 합니다.
AI 속도조절은 정말 소음일까
발단은 아모데이의 “We must slow the frontier”였습니다. 명분은 안전입니다. AI끼리 대화를 주고받으며 지시한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 벌어졌고, 그래서 외부 평가기관에 직원 수준의 접근권을 주고 국가 간 공통 안전기준을 만들자는 겁니다. 샘 올트먼도 동조했고, 일론 머스크도 맞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 “AI에서 이기는 자가 이긴다”는 거죠. 데이비드 색스는 한술 더 떠 “줄일 거면 너희끼리 줄여라”고 비꼬았습니다.
염 이사님과 영상에서 인용한 노근창 대표의 해석은 같은 방향입니다. 이건 기술 균열이 아니라 선두 주자의 진입장벽 쌓기라는 겁니다. 앤트로픽과 오픈AI 모두 상장을 준비하고 있고 조달 규모가 커진 만큼 자체 컴플라이언스 규정이 필요한데, 그 규정이 만들어지는 순간 후발 주자는 그 벽을 넘어야 합니다. 오펙처럼 카르텔을 짜고 기준을 세우면 중국 오픈소스 모델들은 규격 밖으로 밀려나게 되죠. 게다가 보안을 강화하면 반도체 성능은 오히려 더 필요해집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자본지출 가이던스가 내려간 게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2GW인 AI 데이터센터를 3배로 늘리고 6년간 1,7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보수적인 회사가 그렇게 움직이는 건 수요를 봤기 때문이죠. 메모리는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상황이고 수요는 계속 늘어납니다. 그러니 AI 수요가 줄었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소음’이라는 단어에는 조금 걸리는 게 있습니다. 소음이라는 건 지나가면 사라진다는 뜻인데, 표준화와 규제는 한 번 만들어지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데이터센터 수요는 그대로여도, 중국 밸류체인에 매출을 의존하는 기업이나 오픈소스 생태계에 올라타 있던 소형 AI 기업들에게는 실질적인 구조 변화입니다. 우리 증시에서도 중국 노출도가 높은 소부장 기업들은 이 이슈를 소음으로만 볼 수 없죠. 저는 “수요에는 소음, 산업 지형에는 신호” 정도로 나눠 읽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4조 원씩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AI 섹터의 밸류에이션이 어떤 상태인지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외국인 매도 4조 원이 남긴 질문
그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4조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염 이사님 표현대로 “초토화”였죠. 7,000선 돌파는 실패했고 6,500까지 밀릴 가능성도 열어뒀습니다. 추석 전까지는 6,500~7,000 사이에서 오르내릴 거라는 전망이었고요. SK그룹주, 2차전지, 원전, 자동차, 지주사까지 거의 전 업종이 빠졌습니다. 그나마 보안주는 급등했는데, 이번 이슈의 본질이 AI 보안이었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매크로 쪽은 오히려 나쁘지 않았습니다. 미국 8월 CPI는 예상에 부합했고 근원 물가는 2021년 3월 이후 최저치였습니다. 헤드라인이 튄 건 유가 때문이었죠. 주거비를 뺀 근원 물가는 2%가 채 안 됩니다. 다만 시장은 끈적한 물가를 근거로 다음 주 FOMC 금리 인상에 베팅했고, 미국 증시는 그걸 악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3대 지수가 모두 올랐습니다. 인상이 기정사실이 되면 오히려 불확실성이 걷히는 셈이니까요.
여기서 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2022년 가을에 비슷한 장면을 겪었습니다. 외국인이 연일 순매도하던 구간이었고, 저는 “외국인이 던지는데 개인이 받아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으로 삼성전자를 5만 원대 초반에서 전량 정리했습니다. 손실은 크지 않았어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해 말부터 반등이 시작됐는데, 제가 판 이유가 ‘수급’이었다 보니 다시 들어갈 근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수급은 매일 바뀌는데 저는 매일 “아직 외국인이 확실히 사는 건 아니잖아”를 반복했거든요. 결국 2023년 상승 구간을 통째로 구경만 했습니다. 계좌에 찍힌 손실은 0이었지만, 그해 제가 놓친 기회비용은 제 투자 인생에서 가장 비쌌습니다. 그 뒤로 제가 세운 원칙은 단순합니다. 수급 뉴스로는 비중을 줄일 수는 있어도 0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판단이 틀렸을 때 돌아올 문을 스스로 닫아버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참고로 이날부터 한국거래소도 애프터마켓을 시행해 저녁 8시까지 전 종목이 실시간 거래됩니다. 변동성 구간에서는 이 부분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데이터센터가 만드는 연쇄 수혜 – 건설, 엔진, MLCC
영상에서 가장 실용적이었던 부분은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전력난과 주민 반발로 빅테크가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고, 그 공사를 실제로 수행하는 건 건설사입니다. 데이터센터는 기계·전기·배관 등 기계장치 영역이 공사비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공기가 2~3년으로 짧아 난이도가 높습니다. 아무나 못 짓는다는 뜻이죠.
- GS건설 – 2010년대부터 LG유플러스, 네이버 각 세종 등 시공 이력 보유. GS그룹이 1.2GW 동해 AI 데이터센터를 직접 추진 중이라 2~3년 내 10조 원 이상 수주가 매출로 잡힐 가능성
- DL이앤씨 – 하반기 2조 원 데이터센터 수주 목표 제시. 충남 당진 송산 300MW(약 1조 원) 시공사 선정, 11월 초 착공 예정. 자회사 DL에너지가 미국 복합화력에 지분 투자한 이력이 있어 텍사스 대미 투자 1호 가능성도 거론
- HD현대중공업 – 가스터빈 병목의 대체재. GE버노바 수주잔고가 116기, 현재 예약은 2031년 인도분. 대형 5개사가 100% 가동 중이라 2032년까지 공급이 안 납니다. 그 빈틈을 선박 엔진과 육상 발전 엔진으로 메우겠다는 전략이고, 증설이 끝나면 세계 1위가 됩니다
- 삼성전기 – 무라타가 IT용·전장용 범용 MLCC 생산 중단을 고객사에 통지하면서 공급 부족이 고사양에서 범용까지 번지는 중
다만 시간축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HD현대중공업 엔진 증설은 2029년부터 공급이 시작되고 실적 반영은 2028년 하반기~2029년입니다. 지금 사서 3년을 기다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건설사의 데이터센터 수주는 매출 인식이 빠른 편이라 실적에 훨씬 빨리 반영됩니다. 같은 ‘데이터센터 수혜주’라도 현금흐름이 들어오는 시점이 이렇게 다릅니다. 저는 테마 이름이 같다고 같은 바구니에 담는 게 개인 투자자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AI 속도조절과 별개로, 원전과 유가는 따로 움직입니다
원전은 9월 18일이 분수령입니다. 대미 투자 특별법 1호 발표에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총 8기 중 6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 AP1000, 2기는 한국형 APR1400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APR1400은 미국 노형 대비 30% 저렴하고 납기도 빠릅니다. 미국이 앞으로 300기를 지을 계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기는 숫자가 아니라 스타트 라인의 의미입니다. 여기에 국내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위한 신규 원전 4기, 베트남·체코·사우디까지 파이프라인이 쌓여 있습니다. 다만 이미 기대가 반영돼 올라온 만큼 18일에 재료가 노출되면 오히려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왔습니다.
유가는 더 구조적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회로였던 홍해는 예멘 후티 반군이 막았고, UAE 푸자이라 노선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1,000만 배럴 수준인 공급 차질이 1,800만 배럴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 이는 글로벌 수요의 20%에 해당합니다. 미국 경유 가격은 이미 두 배가 올랐고,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원유 수출 금지까지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의 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61%에서 8.4%포인트 떨어졌고 미국 비중이 2.7%포인트 올랐습니다.
여기서 염 이사님이 제시한 접근법이 좋았습니다. “유가가 더 오를 테니 베팅하자”가 아니라 포트폴리오 일부를 유가 방어가 되는 업종으로 헤지하자는 겁니다. 종합상사가 대표적으로 언급됐고, 실제로 현대코퍼레이션은 북미 변압기 수출과 석유화학·철강 트레이딩으로 실적이 받쳐주는데 PER은 3.4배 수준입니다. 2차전지도 마찬가지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합니다. 미국이 중국 배터리를 국방 사업에서 배제하고 중국 의존도가 낮은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주기로 했지만, 이걸 전부 한국의 수혜로 읽으면 안 됩니다. 셀과 배터리 시스템은 한국·일본이 대체 가능해 수혜가 뚜렷하지만, 양극재·전구체·리튬·흑연 같은 소재는 중국 의존도가 워낙 높아 단기 대체가 어렵습니다. 정책 뉴스 한 줄에 섹터 전체가 함께 오르는 날이야말로, 실제로 수혜를 받는 기업과 이름만 얹힌 기업을 구분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AI 속도조절 이슈, 자주 묻는 질문
Q. AI 개발 속도를 늦추면 반도체 수요도 줄어드나요?
A. 영상의 판단은 “아니다”입니다. 빅테크의 자본지출 가이던스가 하향된 적이 없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히려 AI 데이터센터를 3배로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보안을 강화하면 필요한 연산량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다만 다음 분기 실적 발표에서 실제 숫자는 확인해야 합니다.
Q.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지금 들어가도 될까요?
A. 영상에서 인용된 의견은 SK하이닉스 150만 원, 삼성전자 20만 원 중반을 “겁먹을 구간이 아니다”로 봤습니다. PBR 1배(하이닉스 100만 원, 삼성전자 18만 원)를 깰 가능성은 낮다는 근거입니다. 다만 이건 애널리스트의 밸류에이션 가정일 뿐 보장된 하한선이 아닙니다. 목표주가는 근거를 확인하고 참고하는 숫자이지 그대로 받아들일 숫자는 아닙니다.
Q. D램 현물가가 떨어진다는데 괜찮은가요?
A. 현물 시장은 전체 D램의 1~2%에 불과하고 대부분 PC·모바일용 구형 제품을 반영합니다. 지금 시장을 움직이는 건 서버와 AI 데이터센터용이고 이쪽은 고정거래로 판가가 오르고 있어, 현물가가 빠져도 평균 판가는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결론 – 외국인 매도 속에서 제가 잡은 기준
영상 말미의 “답답하지만 인내하자”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여기에 조건을 하나 붙이고 싶습니다. 인내는 왜 들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을 때만 미덕이라는 겁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꺾이지 않았고, 메모리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며, 국내 건설사에 실제 수주가 잡히고 있다면 그건 버틸 근거가 됩니다. 반대로 “많이 빠졌으니까”가 유일한 이유라면 그건 인내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습니다.
제가 이번 주 정리한 체크리스트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9월 18일 대미 투자 특별법 발표에서 APR1400 2기가 실제로 담기는지. 둘째, 다음 주 FOMC 금리 인상이 시장 예상대로 소화되는지. 셋째, 다음 분기 빅테크 실적에서 자본지출 가이던스가 유지되는지. 이 세 가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지금의 조정은 밸류에이션 조정이지 이야기가 깨진 게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투자 판단과 그 책임은 언제나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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