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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110조 원이라는, 역사상 손에 꼽히는 규모의 주주환원을 발표했는데 오히려 주가가 8% 넘게 빠지는 걸 보면서 저도 처음엔 이해가 잘 안 갔습니다. 그런데 엔비디아 실적, 반도체 장비 품절 소식까지 같이 놓고 보니 지금 반도체 사이클이 생각보다 훨씬 길게 갈 수 있겠다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그 판단 근거를 메모리값, 주주환원, 장비품절 세 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메모리값: 젠슨 황이 직접 예고한 상승
엔비디아의 이번 분기 매출은 컨센서스였던 약 921억 달러를 훌쩍 넘는 960억 달러 이상으로 나오면서 13분기 연속 최대 매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도 실적 발표 직후 주가는 오히려 빠졌습니다. 이 패턴, 저도 여러 번 겪어봤습니다. 실적 자체보다 콘퍼런스콜에서 나오는 가이던스가 진짜 방아쇠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CFO가 내년 회계연도 매출 성장률을 70%로 제시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시장이 예상했던 건 44% 성장이었으니 거의 두 배 가까운 서프라이즈였던 셈입니다. 젠슨 황은 여기에 원래는 100% 성장도 가능한데 공급이 부족해서 70%로 낮춰 잡은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메모리 조달 약정 규모가 2,790억 달러까지 커졌다는 사실입니다. 조달 금액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메모리 가격 자체가 오르고 있다는 뜻이고, 젠슨 황도 직접 메모리 가격이 더 오를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저도 예전에 반도체 사이클을 볼 때 실수했던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메모리 업황이 꺾이기 직전, 저도 "가격이 이미 많이 올랐으니 곧 꺾이겠지"라는 감으로 미리 비중을 줄였다가 이후 1년 가까이 추가 상승을 그대로 놓친 적이 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는 공급업체 CEO가 직접 "가격이 더 오를 것 같다"고 언급하는 발언의 무게를 훨씬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데이터는 고객 구성입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向 매출은 102% 성장한 반면, 그 외 국가 단위 프로젝트나 네오클라우드, 일반 기업 고객向 매출은 138% 증가했습니다. 그동안 시장이 계속 걱정했던 "소수 빅테크 의존 리스크"를 이번 실적이 스스로 반박한 셈입니다. 게다가 이 수치에는 중국向 매출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메모리 수요 자체의 저변이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단단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주주환원: 110조 원에도 실망한 이유
삼성전자가 발표한 주주환원 재원은 최대 110조 원으로, 절대 금액만 보면 애플의 연간 환원 규모(약 125조 원)에 근접하는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주가가 발표 이후 크게 빠진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 아니라 배당 위주였다는 점입니다. SK하이닉스는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 방식은 시장에 매수세를 직접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어 주가에 더 우호적으로 작용합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번에 소각 없이 배당 중심으로 발표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쉽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둘째는 눈높이 문제입니다. 시장은 최소 120조 원, 많게는 200조 원까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낮은 금액이 나오면서 절대적으로는 큰 금액이었음에도 실망 매물이 나왔습니다. 셋째는 2027~2029년에 해당하는 차기 3개년 주주환원 정책이 이번에 함께 공개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 부분이 10월 말 실적 발표로 미뤄졌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지분을 약 10% 보유하고 있는데, 만약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전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이 두 금융 계열사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올라가 금산법(금융·산업자본 분리 규제) 한도를 넘길 위험이 생깁니다. 그래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소각보다 배당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금산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소각이 이뤄진다면 우선주 위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시장의 실망이 실질보다는 형식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금액 자체는 역사상 최대 수준인데, 소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실망 매물이 나온 건 다소 과도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다만 동시에, 금산법이라는 구조적 제약 때문에 보통주 주주 입장에서는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드는 직접적인 수혜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삼성전자 보통주보다 우선주 쪽의 상대적 매력이 계속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실제로 이 부분을 포트폴리오에서 비중 조정할 때 참고하고 있습니다.
장비품절: 사이클이 길어진다는 신호
메모리값 상승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걸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가 반도체 장비 품절 현상입니다. 장비는 반도체 공장 증설의 필수 조건인데, 지금 전 세계 주요 장비사들의 납기가 일제히 두 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노광장비 회사는 내년 생산능력이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로 알려져 있고, 추가로 30% 증설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검사 장비 회사는 평균 납기가 12개월, 일부 제품은 18~24개월까지 벌어져 있고, 식각 장비 회사도 납기 대응이 상당히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국내에서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층층이 쌓을 때 반도체 칩을 붙이는 본더 장비를 만드는 한미반도체의 납기가 원래 3~4개월에서 6~8개월로, 일부는 1년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런 납기 지연은 결국 신규 생산 라인 증설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건 메모리 가격에는 우호적인 신호입니다.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지 못하면 그만큼 가격 강세 국면이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엔비디아도 이번 실적 발표에서 국내 메모리 3사와 증설을 협의 중이라고 언급했는데, 협의가 진행되더라도 실제 공급 증가 속도는 이 장비 병목 때문에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한미반도체가 8월 18일 인천의 기존 공장(머큐리 공장)을 560억 원에 인수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새로 짓기보다 이미 지어진 공장을 사들여서 공급 대응 속도를 앞당기겠다는 선제적 대응인 셈입니다. 저는 이 장비 병목 현상을 그냥 "장비주에도 좋은 소식" 정도로만 해석하는 건 절반짜리 해석이라고 봅니다. 메모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경쟁사들도 똑같이 증설 속도가 묶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번 업사이클에서는 과거처럼 특정 업체가 선제적으로 증설해서 공급 과잉을 유발하는 시나리오 자체가 구조적으로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병목이 언젠가 풀리는 시점에는 그만큼 한꺼번에 공급이 몰릴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리스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삼성전자 주가가 주주환원 발표 이후 빠졌는데, 지금 사도 되나요?
A. 주가 하락은 환원 규모 자체보다 소각 부재와 시장 기대치 대비 차이에서 비롯된 실망 매물 성격이 강합니다. 10월 말 실적 발표에서 나올 차기 3개년 주주환원 정책과 우선주 소각 여부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절대적인 반도체 업황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Q. 삼성전자 보통주와 우선주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요?
A.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금산법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향후 자사주 소각이 이뤄진다면 우선주 위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각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가에 직접적으로 우호적인 효과를 주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우선주의 상대적 매력이 부각될 여지가 있습니다.
Q. 반도체 장비 납기가 늘어나는 게 왜 메모리 가격에 긍정적인가요?
A. 장비 공급이 지연되면 메모리 제조사들의 신규 라인 증설 속도가 느려집니다. 공급이 빠르게 늘지 못하면 현재의 가격 강세 국면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만 이 병목이 풀리는 시점에는 공급이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합니다.
Q. 엔비디아 고객 다변화가 왜 중요한 신호인가요?
A. 그동안 시장은 엔비디아의 매출이 소수 빅테크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을 우려해왔습니다. 이번 실적에서 하이퍼스케일러 외 고객군의 매출 성장률이 하이퍼스케일러보다 더 높게 나오면서, 수요 기반이 특정 대형 고객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단위 프로젝트나 일반 기업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이는 수요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됩니다.
결론
정리하면 메모리값, 주주환원, 장비품절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엔비디아의 가이던스와 젠슨 황의 발언은 메모리 수요가 견조하다는 걸 보여주고, 글로벌 장비 품절은 공급이 그 수요를 빠르게 따라잡기 어렵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둘이 맞물리면 메모리 가격 강세 국면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실망은 실질적인 업황 훼손이 아니라 형식과 눈높이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금산법이라는 구조적 제약은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 변수이기 때문에, 보통주와 우선주 중 어느 쪽에 집중할지는 개인의 투자 목적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상황을 업황 자체의 훼손이 아니라 단기 눈높이 조정 국면으로 보고, 10월 말 실적 발표에서 나올 차기 주주환원 정책을 다음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