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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7,000포인트 근처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걸 보면서 저도 예전에 비슷한 구간에서 물려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실적이 나빠진 것도, 반도체 수요가 꺾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못 올라가는지 궁금하셨던 분들 많으실 텐데, 결국 답은 국내 매물대 문제와 미국 장기 국채 금리 급등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모아졌습니다. 여기에 미중 금리 격차까지 얹어서 정리해봤습니다.
매물대: 100조 원의 벽을 뚫는 유일한 방법
지금 코스피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저평가 구간에 있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가격이 싸다는 것과 그 가격대에 물린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코스피 7,000포인트부터 전고점까지 구간에 쌓여 있는 매물대(과거에 매수해 물려 있는 물량이 몰린 가격대) 규모가 약 100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삼성전자 기준으로 보면 30만 원대 구간이 바로 이 매물대의 핵심인데, 이 가격에 물린 투자자들이 조금이라도 본전 근처로 올라오면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지수가 위로 뚫고 올라가려 할 때마다 매물이 쏟아지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거래대금도 크게 줄었습니다. 한때 하루 100조 원 가까이 오가던 거래대금이 최근에는 60조 원대, 심할 때는 50조 원 아래로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꾸준히 사는 주체가 하나 있는데, 바로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입니다. 개인도, 외국인도, 기관도 아닌 자사주가 거의 유일하게 매수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걸 보면서 나온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정해진 자사주 매입 한도를 조금씩 나눠서 매수하는 대신 하루에 확 몰아서 상한가를 만들어버리면, 팔 시간을 주지 않아 오히려 매물대를 더 빠르게 돌파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연준이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심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자금을 잘게 나눠 쓰기보다 한 번에 시장을 놀라게 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예전에 특정 종목에서 이런 매물대 구간에 물려 몇 달을 버텨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배운 건, 매물대는 시간이 지나야 자연스럽게 소화되거나, 아니면 정말 강력한 모멘텀 하나가 그 물량을 한꺼번에 흡수해줘야 뚫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국면을 "펀더멘탈이 나빠서"가 아니라 "과거 매수 물량을 소화하는 기간 조정"으로 해석하고 있고, 실제로 8월 한 달간 저점 대비 코스피가 약 30% 가까이 반등했다가 다시 눌리는 흐름도 이 매물대 논리와 맞아떨어진다고 봅니다.
재정적자: AI가 물가를 낮춘다는 말, 시장은 안 믿는다
지금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미국 장기 국채 금리입니다. 10년물이 4.8% 수준까지 올라와 있고, 30년물은 5.8~5.9%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는 것 자체보다, 그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이 대응 시간을 부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상승의 근본 배경에는 미국의 재정적자에 대한 채권 투자자들의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정부가 계속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신호를 주는데, 그걸 사주는 쪽에서는 "당신이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 더 높은 금리를 달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셈입니다. 채권 금리가 오르는 것과 주식이 빠지는 것은 결국 같은 증상, 즉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국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박 논리가 AI 생산성입니다. AI로 생산성이 올라가면 같은 물건을 더 싸게 많이 만들 수 있어 결국 물가를 끌어내릴 거라는 주장인데, 저는 이 논리에 항상 의문을 갖습니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이 있었던 시기를 돌아봐도, 그로 인해 물가가 실제로 하락한 경우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선진국 물가가 연간 3%를 넘는 상황에서, "AI가 있으니 괜찮다"는 서사만으로 장기 국채 투자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이 진짜로 의심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생산성 향상이 정말 물가를 잡을 것인가, 그리고 정부가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을 줄일 의지가 정말 있는가. 이 두 가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장기 금리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연준 내에서 케빈 워시가 잭슨홀에서 AI를 노동·자본과 나란히 놓는 '제3의 생산요소'라고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연준 의장급 인사가 AI의 경제적 파급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시장은 이제 말을 자주 하는 베센트보다 말을 아끼는 워시의 발언 하나하나를 더 무겁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런 식으로 소수의 발언을 과도하게 해석해 방향을 예단하는 방식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건 발언의 뉘앙스가 아니라 실제 재정정책과 물가 데이터이기 때문입니다.
미중금리차: 300bp가 만드는 새로운 패권 경쟁
지금 미국과 중국의 10년물 국채 금리 차이는 약 300bp(3%포인트)에 달합니다. 미국이 약 5%인 반면 중국은 약 2% 수준인데, 이 정도의 격차는 이례적인 수준입니다. 이 차이가 의미하는 건 단순한 금리 차원을 넘어섭니다. 미중 패권 경쟁이 AI·기술 경쟁에서 이제는 장기 자본을 누가 더 잘 유치하느냐는 자본 유치 경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지금 장기 자본을 유치하기가 어려운 국면이라 금리가 계속 오르는 반면, 중국은 GDP 대비 예금 비율이 100%를 넘을 정도로 국내에 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미국 빅테크들이 AI 인프라를 짓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회사채 발행 등으로 조달하고 있는데, 이 자금 조달 경쟁이 국채 금리에도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는 9월 24일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관세 같은 기존 의제 외에도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팔지 않거나, 중국의 민간 자본이 미국의 에너지·인프라 자금 조달에 우회적으로 참여하는 식의 거래가 논의될 수 있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전략적 패권 경쟁 관계라 해도, 서로 필요한 부분에서는 실리적으로 주고받는 거래가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 시나리오를 흥미로운 가설로는 보지만, 확정된 전망으로 받아들이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미중 양국이 AI·반도체 패권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도 속에서, 동시에 장기 자본 거래를 주고받는다는 건 상당히 모순적인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과거 미일 패권 경쟁 시기에도 표면적인 대립과 별개로 이런 실리적 거래가 종종 있었던 전례가 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합니다. 정상회담 이후 실제로 어떤 합의가 나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미국 장기 금리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지는 결과가 나온 뒤에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코스피가 저평가 상태인데 왜 계속 못 올라가나요?
A. 저평가와 매물대 문제는 별개입니다. 7,000포인트부터 전고점 구간에 약 100조 원 규모의 매물대가 쌓여 있어, 지수가 오를 때마다 본전 심리의 매도 물량이 계속 나오는 구조입니다. 이 물량이 시간을 두고 소화되거나 강한 매수 모멘텀으로 한꺼번에 흡수돼야 본격적인 상승이 가능합니다.
Q.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계속 오르는 이유가 뭔가요?
A.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채권 투자자들의 불신입니다. 정부가 국채 발행을 줄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AI 생산성이 물가를 낮춰줄 거라는 기대만으로는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실제 물가 하락으로 이어진 전례가 드물다는 점도 이런 의심을 뒷받침합니다.
Q. 미중 금리 격차가 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나요?
A. 300bp에 달하는 격차는 단순한 금리 차이가 아니라, 두 나라가 장기 자본을 누가 더 잘 유치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새로운 경쟁 국면을 보여줍니다. 미국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부담이 큰 반면 중국은 국내에 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9월 말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실리적 논의가 나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Q. 자사주 매입만으로 매물대를 뚫을 수 있나요?
A. 현재는 자사주가 거의 유일한 매수 주체이지만, 정해진 한도를 조금씩 나눠 매수하는 방식으로는 매물대를 빠르게 돌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 번에 집중적으로 매수해 시장에 강한 신호를 주는 방식이 이론적으로는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결정이 나올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결론
매물대, 재정적자, 미중금리차는 각각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국내 증시는 과거 매수 물량이라는 국내적 병목에 걸려 있고, 미국 장기 금리는 재정적자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때문에 쉽게 내려오지 않고 있으며, 이 둘의 배경에는 미중 간 장기 자본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 구도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지금 국면을 펀더멘탈 훼손이 아니라 과거 물량을 소화하는 기간 조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 장기 금리가 5%를 넘어서는지, 그리고 9월 말 미중 정상회담에서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할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매물대는 결국 시간이나 모멘텀 중 하나로 풀려야 하는 문제이고, 지금은 그 시간을 견디는 구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